사람들이 '혐오'를 언급하는 횟수가 근래 들어 부쩍 증가했다고 한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162374&pDate=20160127
기억하자면, 채 5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 혐오와 관련된 말들이 인터넷에서부터 유행처럼 돌기 시작한것 같다.
이제는 그저 혐오 수준이 아닌, '극혐' 이라는 말을 시도때도 없이 쓸 정도로 혐오는 일상화된 말로 발전한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특정 대상을 향한 모욕 혹은 증오의 감정을 나타내는게 전보다 늘었네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혐오 라는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는 것은,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용납할 때 가능한 것이다.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더 나아가 증오하는 사람 또는 대상이 있다고 할 지라도 주변에서 그런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 탐탁치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면 감정 표현을 자제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물론 온라인 상에서 더 심하고 일상에서 극혐을 붙이는 경우는 흔치 않은듯 하지만, 혐오 라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진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표현을 용납하고 있다는 거다.
물론 감정 억제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고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감정 표출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이 되야 본인에게나 타인에게나 불쾌감 없는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싫다 정도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부정의 기분을, 혐오 라는 최대치의 말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면 차츰 실제로 싫어하는 정도 보다 더욱 심한 거부의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는 타인 혹은 사물에 대한 감정의 기본치가 부정으로 치우친 상태에 가깝게 설정되는 결과를 초래, 싫어하는 대상 이외의 것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삐딱하게 보는 일이 생긴다.
물론 극혐이 유행하는 만큼이나 극호 라는 말도 많이 쓰이기는 하나, 문제는 두 단어가 상대에게 전달되는 효과가 지나칠만큼 상이하다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좋다'와 '싫다'가 감정의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이 되어서 호불호의 사실만을 전하면 좋겠지만, 실제로 저런 말을 듣는다면 부정 표현이 더 오래 기억되는게 일반적이다.
더구나 부정표현의 대상이 청자 자신이거나 청자가 애착을 가지는 대상이라면, 싫음의 논리적 이유는 전혀 납득되지 않고 '저 사람이 날 싫어하네'로 부적절한 인식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타인은 싫어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점을 간과하며 살기 마련인데 이런 기본적인 인간의 습성에 더해, 사회적으로 혐오를 용납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종국에는 나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을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 다름은 정치 성향일 수도, 삶의 방식일수도, 취미/기호일수도, 심지어 성별일 수도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런 모습을 띄기 시작하고 있다는 거다.
삶에 있어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12년간의 초중고 학창시절을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정답을 찾는' 방식으로 지낸 결과, 한국인들은 20대가 되어서야 인생에 대해 비로소 조금 고민을 하는 시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내 당장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에 의해 그런 고민은 사치 혹은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생에 대한 고찰이 없는 삶이 계속되면, 하루 하루의 단편적 접촉에만 집중하게 되고 이는 나와 타인의 입장을 바꾸어보는 생각, 그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잃게 만든다.
이러다 보니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이면 왜 그럴까에 대한 고민과 그로 인한 이해의 과정이 아니라, 왜 저러지에 대한 부정과 혐오의 기분으로 이어지는 거다.
서비스직 종사자에 대한 갑질과 보복 운전 등의 타인을 향한 자세를 보면 이런 경향을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혼자 사는게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관계를 맺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당장의 내 기분, 감정에만 초점을 두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 점점 타인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마침내는 사회 구성원 서로간의 유대와 신뢰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앞에선 웃고 있지만 돌아서면 날 흉볼것 같아 불안하고, 사소한 말에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반박하고,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난 이래서 그런건데?' 라는 식으로 나만의 입장만을 고집하게 되어 분명 내가 잘못했음에도 죄송해요 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 일을 키우는 상황이 잦아진다.
이런 쓸데없는 감정의 소모가 이어지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구성원들의 이런 불안정화는 이내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아무리 잘 한다 해도 내가 속한 사회가, 옆의 타인이 저런 식으로 악화되어 간다면 결국에는 나도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벼운 부정으로도 충분히 의사가 전달되는 상황에서는 굳이 극단적인 표현을 쓰지 않도록 자제하는 마음을 가지자.
더이상 부정적인 단어와 언사가 일상적인 일이 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해가는 일이 필요할 때다.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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