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기사의 허와 실
언제부턴가 신문 기사를 접하는 곳이 지면에서 화면으로 옮겨졌다.
어렸을때는 신문지를 척 하니 펼쳐놓고, 복잡한 한문이 가득 섞여 있는 글들을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살펴보는 어른들이 무척 대단해 보였다.
아버지 혹은 친척 어르신, 혹은 간혹 버스나 기타 공공 장소에서 연장자 들의 어깨 너머로
같은 지면을 들여다 보면서도 당췌 당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되던 때가 있었지.
그때의 내겐, 신문이란 그저 어렵고 복잡한, 어른 세계의 이야기들.. 어른들만이 알아듣는 암호들로 가득한 종이 였을 뿐.
머리가 커지고, 조금이나마 한문을 깨치게 되면서 나 역시 비로소 그들이 보던 내용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신문기사는 무조건 옳은 내용이겠지 라는 정도에서 머물렀었지.
마치 티비에 나오는건 다 맞는 말이고 옳은 얘기야 라고 주장하는 꼬맹이들처럼.
사실 그 전제는 일정 부분 타당하다.
방송 혹은 신문을 통해 전달되는 '사실'에 대한 정보는, 나름의 검증을 거친 비교적 '정확한 사실'에 초점을 두니까.
더구나 '주요' 언론일수록, 자신들의 실수가 일으킬 파장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대체로 신중한 기사를 작성한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대 변혁을 맞이했다.
요즘의 나는 아마 다른 젊은이들, 아니 젊은이 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남녀노소가 그러하듯,
대부분의 뉴스를 지면이 아닌 화면을 통해 접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링크된 기사를 클릭해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내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골라서 읽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지면을 통해 얻을수 있던 사회 전반에 걸친 지식이 아닌,
특정 분야, 특정 현상에 대한 지식만을 얻게 됐다.
좋게 말하자면 전문가의 지식에 버금가는 내용을 접하게 된 셈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세상에 대한 시각이 좁아진 셈이기도 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속도가 우선인 시대에서는
기사의 정확성 보다는 '남보다 앞선 특종 한방'이 기자의 덕목으로 추앙받게 된다.
가끔 접하는 낚시성 기사들을 보면 댓글에 '나도 기자 하겠다' 라고 달리는거, 타당한거다.
더이상 신문 기자는 자신이 알게된 정보의 '정확성'을 검증하기 위해 사실 확인에 주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 일부 그런 기자들이 있긴 하지.
주요 매체들의 기자들.
하지만 숱하게 넘쳐나는 인터넷 신문 혹은 찌라시 신문의 기자들은
정확성 따위는 대충 '어디서 뿌린 정보냐' 정도만 확인할 뿐,
이내 남보다 빨리 올리기 위해 1보, 2보 등을 써가며 바로바로 인터넷에 올리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어디서 뿌린 정보냐' 라는 말은
보도자료의 출처가 어디냐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알기로 기사가 생성되는 길은 두가지가 있다.
1. 기자가 목적을 가지고 발로 뛰어서 내용을 취재하고 기사화 하는 경우
2. 자신들의 일에 대해 홍보 혹은 전달하고자 보도자료를 만들어 기자에게 전달해 기사화 되는 경우
한마디로, 직접 알아내서 쓰느냐 남이 들려주는걸 정리해서 쓰느냐의 차이인 거다.
그러니 인터넷 기사를 보다 보면,
기사를 올린 매체는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대동소이한 경우가 발생하는 거다.
심지어 똑같은 내용일때도 있지.
그만큼 요즘의 기자들 중 일부는, 엄밀한 의미에서 기자라기 보다
ctrl+c, ctrl+v 를 잘하는, 키보드워리어의 발전형에 가깝다고 하겠다.
문제는,
이렇게 전달되는 기사 중에 일부는
'사실' 그대로의 전달이 아닌, '주관적 개입'을 통한 '사실의 변형'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시장에 나가 가게를 들러보고 왔다' 라고 하는 '사실'이 있다고 하면
대통령을 옹호하는 매체에서는 '대통령의 민심 확인 노력이 있었으며 향후 서민정책에 주력할 것 예상' 등을 쓸것이고
비판하는 매체에서는 '생색내기 행차, 전시행정 급급' 등이 나올거다.
사실에 대한 기사가 포함되긴 하겠지만,
그걸 토대로 보다 발전된 내용이 전개되는 거지.
언론의 현실비판 측면에서 본다면 그건 분명 긍정적인 자세다.
현재의 '팩트'를 전달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그로 인해 벌어질 상황에 대처할 것을 주문하는 것. 얼마나 이상적인가.
다만 그 배경에, 자신들의 이권을 유지하기 위한 '검은 속셈'을 깔게 되는게 문제지.
기사를 볼때, 이 기사가 의미하는게 뭔가에 대해 한번쯤 차분히 살펴본다면..
기자가 어떤 생각으로 이걸 쓴거지? 하고 자문해 본다면
과연 거기 쓰인 내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한번 걸러서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대개의 경우,
기사의 내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 본인보다 데스크-편집부장 혹은 그 이상-에서 가지고 있다.
2010년 9월 13일 현재,
나름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기사중에 '신정환' 필리핀 도박설 기사가 있다.
연예인 신정환이 방송 녹화를 사전에 말도 없이 연이어 펑크내자 그 행적에 대한 의문이 돌다가 이내 필리핀에서 도박중이더라 라는 소문이 난게 그 내용인데..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도박에 초점을 맞춘 내용으로 기사가 줄줄이 나온 반면, (전형적인 기사 베끼기)
필리핀 현지에서 발행되는 마닐라서울 이라는 매체에서는 1면에 한국 언론들이 신정환을 몰아가고 있다며,
신정환이 밝힌 사태의 전모-자신은 여행차 왔으며 도착 직후 뎅기열에 걸려 입원치료중이었을 뿐-를 그대로 인용해 신정환을 옹호했다.
분명 한국 언론의 취재 행태는 사실 확인도 이뤄지기 전에 추측성 기사로 작성된 것도 있긴 하다.
그러나 마닐라서울의 보도 역시, 제대로된 사실 확인이라기 보다 신정환의 해명을 그대로 옮긴것에 불과할 뿐임을 고려하면,
실상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필리핀 관광 혹은 도박 사업에 여파가 미쳐 자신들의 밥그릇이 작아질 것을 걱정한 사람들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신문기자 역시 결국 사람이고, 자신의 밥벌이, 돈벌이를 걱정해야 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간간이 적발되는 것처럼 자신이 알게된 비리 혹은 잘못을 가지고 '딜'을 통해 기사화 하는 대신 돈을 받고 눈감는 경우가 생기는 거고,
그런 불법 까지는 아니더라도 데스크 차원에서 신문 기사의 미묘한 내용 편집을 통해 사실을 교묘하게 흘려서 전달하기도 하는거다.
월급쟁이 일개 기자가 감히 데스크의 편집에 왈가왈부해?
일선 교사가 교장에게 못대드는거랑 똑같은 거다.
결국, 데스크 층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포기하면서 철저한 언론인의 자세로 나 배고파도 사실을 전달하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밑에 기자들이 아무리 땀빼가며 기사를 써대도 '형님 동생' 하면서 샤바샤바된 기사만 나올 뿐.
뭐.. 이와 관련해서는 경험을 토대로 추후 다시 한번 쓸테지만,
신문기사 또는 방송기사, 뉴스 등을 보는 사람은
자신만의 뉴스 해석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문에 나온 얘기니까, 방송에 나왔으니까 저건 무조건 사실...
이라고 생각한다면...
넌 멍청이. 풉.